일월오봉도 (日月五峰圖)
일월오악도(日月五岳圖), 일월곤륜도(日月崑崙圖),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
위와 같이 명칭 3가지로 다른 이름으로 불려지지만 모두 같은 뜻으로 불려지며 3가지 중에 주로 많이 불려지는 명칭이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로 많이 사용된다.
그림의 구성을 보면 왼쪽엔 달과 오른쪽엔 해가 떠있고 산에서 폭포가 두줄기로 흘러 내려 치는 파도 모습과 다섯 봉우리의 산이 담겨져 있다. 맨 앞에는 소나무를 그려 넣었다. 그림 화면의 대부분을 점하는 다섯 개의 큰 봉우리와 그 아래 소나무, 폭포 파도를 배치시키고 상단 좌우에 달과 해를 배치시켰으며 이는 화폭 좌우에 균형을 갖추어 매우 안정적인 느낌을 주게 했다.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에 소재가 된 다섯 봉우리의 산은 중국의 5악(岳) 중의 한사람인 서왕모(西王母)가 살고 있다는 쿤룬산[崑崙山]을 주제로 바탕으로 그린 그림이다.
대한민국의 만원 권(신권)에 세종대왕 뒤로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 그림이 담겨져 있으며, 조선시대의 병풍소재나 옷장 장롱 등 실 생활에 사용되는 제품들에 많이사용되었다.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를 만든 본래 목적은 궁중에 기록화를 그리게 되어 있는데 임금의 얼굴을 용안이라 하여 매우 신성시 했는데 만약 임금의 얼굴을 그려 놨다가 훼손이라도 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에 임금 얼굴 대신에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를 그려 넣었다. 임금과 관련이 있는 그림에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를 그려 넣어 임금의 얼굴을 대신해서 임금이 있다는 것을 표현했다.
그후에 차차 이 그림을 임금의 상징으로 여기고 관례로 굳어져 큰 규모의 궁궐 어좌 뒤나 임금의 초상인 어진(御眞)을 모신 진전(眞殿)과 혼전(魂殿) 등에 비치했다. 왕이 거처하는 곳이나 행차시 반드시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가 들어간 병풍을 치거나 장식했으며 왕은 그 그림 앞에 앉았다. 이후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는 왕의 상징물로 관례화 되어 왕과 관련된 곳은 어김없이 이 그림이 등장했다. 그후 조선 후기에는 민화의 범주에서 병풍이나 옷장 등 생활에 사용하는 소품에 장식화로 그려지기 시작 했다.
▶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 유래
중국에서 시작되었다고는 하나 이 그림의 기원이나 발생년도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명나라·청나라시대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현재 이그림의 소수가 중국이나 일본에 남아 있긴 하는데 그작품들은 묘사와 채색에 있어서 한국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한국에서는 조선 시대를 걸쳐 활발한 명맥을 이어오면서 독특하게 발달하여 정교하고 화려한 필치와 채색을 사용해서 정형화된 화폭으로 발전했다.
현존하는 유명한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 대표 그림으로는 현재 덕수궁 중화전(中和殿)과 경복궁 근정전(勤政殿), 창경궁 명정전(明政殿), 창덕궁 인정전(仁政殿)의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의 그림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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